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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unn Alex Kim

걷는 사람,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집으로부터 어느정도 독립을 하고

홀로 경제 활동을 하면서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을때,

그리고 어느정도 사회적인 인정을 받았다라고 느꼈을때,

아주 자연스럽고 안정적이게 흘러가는 삶에서 무기력감을 느낄때가 있다.


더구나 나는 무기력감에 빠져있는 스스로를 보고 자책감에 빠질때가 많은데

언젠가 한 번 하정우의 '웤톸'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그는 일상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어서

소소한 성취감으로부터 무기력감 혹은 늪에 빠진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때부터 나는 무기력감과 자책감을 덜기 위해

그가 잘 닦아놓은 방법들을 조금씩 활용해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내 삶에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점점 더 하정우라는 사람이 궁금해졌고 결국은 이 책까지 찾게되었다.



찬찬히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사람마다 공감하는 부분은 다 다르겠지만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것에 대해 꽤 명쾌하게 문장화하거나 응원을 해주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은 내게 참 힘이 된다.


그런 문장들과 상황들을 선별해놓고 생각날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보면

이미 해보았던 중복된 고민들은 명쾌하게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p38

'왜 저 구석에 있는 스케치처럼 자유롭게 그리지 못하고 완성작들은 디자인 요소에만 매달렸느냐'는 뼈아픈 물음은 던지고 있었다.


p58 

정작 일은 너무나 열심히 하는데 휴식 시간에는 아무런 계획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치고 피로한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곧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기'는 결과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를 잠시 방에 풀어두었다가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일과 휴식을 어중간하게 뒤섞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

일이 바쁠 때 '나중에 몰아서 쉬어야지' 같은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지 않는 것.


p78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p103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진동을 보내서 좀 걸으라고 격려도 해주며,

목표했던 걸음수를 채우면 화면에서 폭죽이 터지면서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손목 위의 이 작은 기계가 내가 걷는 걸 이 토록 응원해주니 조금이라도 더 걷게 된다.


p113

하루종일 촬영한 후 숙소로 돌아가면 '오늘 하루 잘했다'가 아니라 '잘 버텼다'는 생각만 들었다.


p120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어린 예술가들일수록 이처럼 번개 같은 찰나에 집착하기 쉽다.

시간을 오래 들여야 쌓이고 깨우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초반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초조함이 짓눌리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 요행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충동은 절대 예술가의 연로가 될 수 없다.

예술가의 삶은 단 한순간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작업하고 이를 통해 인간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한 걸음씩 진보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예술에서 시간을 견디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날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p122

밀려오는 졸음에 눈을 끔벅거리다가 나는 술자리에 유리구두 대신 그리움을 나겨두고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온다.


일탈도, 치기도 없는 약간은 재미없는 삶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몰라도, 나의 이런 하루가 나는 마음에 든다.


p127

유머는 삶에서 그냥 공기처럼 저절로 흘러야 한다.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면 이런 유머가 나오기 어렵다.


촬영 현장에서도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웃기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된다.


p138

나는 라면에도 고수를 넣는다.

왜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을 빨리 들이켜고 싶어서 라면을 끓였는데, 라면수프의 너무 정확한 맛이 목에 걸릴 때가 있지 않나.


p164

이런 늪에 빠져들려 할 때는 변덕스러운 감정에 나를 맡겨둘 게 아니라 규칙적인 루틴을 정해놓고 내 몸과 일정을 거기에 맞추는 편이 좋다.


사람은 여러가지 요인들로 불안정해지기 쉬운 동물이다.

마치 날씨처럼 매일 다른 사건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기란 쉽지 않다.


p179

그 의자는 일반 의자들보다 약간 더 키가 커서, 앉아 있으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사람과 눈높이가 맞았다.


그것은 현장에 있는 다른 스태프들이 대부분 서서 일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반적인 높이의 의자를 사용한다고 상상해보라. 감독에게 와서 이야기할 때마다 스태프들은 허리를 숙이거나 다리를 구부린 채로 서 있어야 할 것이다.


p183

어? 이 영화를 총괄하는 사람은 난데, 왜 내가 할일이 없지? '저 사람들이 나를 잊어먹은 거 아냐?'

이때 많은 제작자가 자격지심 때문에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이 현장에서 역할이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 괜한 잔소리를 툭툭 던지는 것이다.


제작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 잘 알아야 한다.

아무리 영화의 허점과 결점이 눈에 띄더라도 입을 열 타이밍이 따로 있다.

그 타이밍이 오기 전에는 절대 입을 떼면 안 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에 뛰어든 각 파트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각자의 꽃을 만개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p192

오로지 나만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작고 얕은 마음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 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은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p205

운을 읽는 변호사

성공과 행복은 철저히 개인의 능력치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운과 기세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점에 공감이 갔다.


이 변호사 할아버지는 행운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에 대해 실제 그가 만난 의뢰인들의 삶을 예로 들어서 쉽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p217

나는 한 사람 안에 잠재된 여러 가지 능력을 일생에 걸쳐 끄집어내고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이자 의무라고 본다.

그런 과정이 결국 나를 완성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p239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신과 함께> 1편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진혼곡'이라 표현했다.

언뜻 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요인처럼 보이지만, 내겐 그것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무엇보다 확실하고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p241

영화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리는 근간은 대게 '사람'이다.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나 깜짝 놀랄 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찍을지, 그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핀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는 아내, 자녀, 부모와도 같은 가족이고, 삶의 절대적인 의미다. 그런 사람은 누구도 못 당한다.

반드시 뭔가를 이루어낸다.


관객들은 이 모든 배경과 후일담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력과 에너지 총량을 기가 막히게 분별하고

감지해냄으로써, 결국 자신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p261

그들은 예술가로서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인고의 시간을 견뎌가며 작품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후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p277

아버지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사람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볼 수 있었다.


키 큰 어른나무들이 뜨거운 빛을 적당히 통제해주어 튼튼하게 자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무들이 모여 있으면 서로 영양분을 나누면서 성장한다.


p280

영화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아직 때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가서 <스토커>를 먼저 찍었고, 돌아와 원점에서 다시 각색을 시작했다.


p282

박찬욱 감독은 노력의 방향과 방법을 아는 감독이었고, 노력의 밀도를 높임으로써 모든 작품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겨넣었다.


p284

운동 시간 외에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오디션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했다.


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고만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